朱正善
2020-03-04 19:02:33 출처:cri
편집:朱正善

투족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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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족은 중국에서 인구가 비교적 적은 소수민족의 하나이다. 2010년 제6차 전국인구보편조사에 따르면 투족 총 인구는 28만9565명이다. 투족은 주로 청해-티베트고원 동북부에 자리한 청해 호조(互助)투족 자치현에 집중 거주하고 있으며 청해의 민화(民和)와 대통(大通) 두 현과 감숙의 천축(天祝)티베트족자치현에도 꽤 많이 모여산다. 그 외 투족은 청해의 악도(樂都)와 문원(門源), 도란(都蘭),귀덕(貴德), 공화(共和) , 서녕(西寧) 등지와 감숙의 탁니(卓尼), 영등(永登), 감남(甘南) 등지에 산재해 있다.

투족은 본 민족언어는 있으나 본 민족 문자는 없다. 투족어는 알타이어계 몽골어족에 속하며 기초어휘가 몽골어와 같거나 비슷하다. 현대 투족어는 호조(互助)와 민화(民和), 동인(同仁) 등 세가지 방언으로 나뉜다. 청해 호조와 대통, 악도, 감숙 천축 등지에서는 호조방언, 청해 민화와 감숙 적석산(积石山) 등 지에서는 민화방언, 청해 동인에서는 동인방언을 사용한다. 하지만 감숙 탁니 투족은 본 민족의 언어를 완전히 잃고 현지 티베트어와 아주 근접한 한어티베트어계미얀마족 티베트어갈래의 방안을 사용한다. 이처럼 탁니 투족이 티베트어와 한어를 주로 사용하는 외 기타 지역의 투족도 본 민족 언어와 한어, 티베트어를 겸용한다. 투족은 과거 한문을 통용했다. 그러다 1979년 청해성 관련부처가 한어병음을 기반으로 한 ‘투문방안(초안)’을 시험 보급하면서 본 민족의 문자를 갖게 되었다.

투족은 주로 목축업과 농업에 종사하며 특히 양을 잘 기르는 민족으로 정평이 나있다. 투족은 원나라와 명나라 이후부터 라마교를 신봉하고 있다.

투족의 족칭은 많은 편으로 각지 투족마다 서로 다른 자칭과 호칭이 있다. 호조와 대통, 천축 일대의 투족은 몽골인을 뜻하는‘몽고르’, 백몽골을 뜻하는 ‘차칸몽고’라고 자칭하며 민화현의 투족은 투족인이라는 뜻의‘투쿤’(土昆)으로 자칭하고 기타 지역의 투족은 ‘투가네’라고 자칭한다. 한편 인근의 티베트족들은 투족을 티베트 북부 유목민족의 범칭인‘훠르’로 부른다. 또 한족과 회족들은 투족을 ‘투인’(土人), ‘투민’(土民)이라고 부른다.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후에는 본 민족의 염원에 따라 이들을 투족으로 통칭하고 있다.

투족은 그 역사가 유구하다. 비록 투족에 대한 계통적인 문자기재고 없고 투족의 기원과 관련해 정설도 없지만 학술계의 설법을 본다면 대체로 몽골인설, 투구훈(훠르인)설, 몽골인과 훠르인융합설, 사타돌궐설, 다원혼합설 등이 있다. 그 중 몽골인설과 훠르인설이 지배적이다.

몽골인설을 보기로 하자. 투족은 ‘몽고르’ 또는 ‘차칸몽고’로 자칭한다. 이로부터 투족이 몽골족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보아낼 수 있다. 호조현 투족들속에서는 선조가 몽골인이고 칭키스탄의 대 장군 거리리트가 부대를 거느리고 오늘의 호조현 경내에 주둔한 뒤 그 곳에 정착하면서 현지의 훠르인과 통혼해 투족을 형성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러한 전설은 청나라 티베트 문헌 ‘우녕사지’(佑宁寺志)에 기재되어 있다. 그리고 한문 사서에도 칭키스칸의 몽골군이 서녕일대에 주둔한 기재가 있다. 당시 서녕 관할하의 호조는 서녕과 불과 40,50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원세조로부터 명나라 초반에 이르기까지의 사서를 본다면 몽골군이 서녕일대에 주둔하거나 이주한 기재가 있다. 이처럼 민간전설이나 사서의 기재 외 투족의 언어로부터도 일부 투족은 몽골인의 후예임을 알 수 있다. 알타이어계 몽골어족에 속하는 투족어의 약 절반이상 어휘가 몽골어의 카라친 방언과 비슷하다. 이는 호조 투족 중 일부분은 확실히 몽골인의 후예임을 빙증한다.

투족의 투구훈 즉 훠르인설을 보기로 하자. 티베트족은 티베트 북부 및 그 이북지역에 살고 있는 유목민족을 훠르인이라고 범칭했다. 오늘 날 호조와 대통 투족지역의 십여개 마을을 투족어로 ‘투훈’이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에 투구훈이 거주해 얻은 이름일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훈’은 몽골어로 ‘사람’이라는 뜻이다. 때문에 원나라때 ‘투훈’이 ‘투인’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원나라 말, 명나라 초반의 한문 사서를 보면 ‘투인’,’투민’이라는 기재가 나온다. 이 시기 투족이 이미 뚜렷한 민족특징을 갖추었음을 말해준다. 그 뒤 명나라와 청나라 시기의 일부 사서에서도 명나라 투족이 이미 안정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고 본 민족의 집거지가 있음을 밝혔다. 사서에 등장한  지역들이 지금의 청해성 호조와 악도, 문원, 민화, 감숙 천축 등 곳이다. 이 일대가 바로 지금 투족의 주요한 분포지이다. 비록 투족이 한족과 티베트족과 잡거하고 있지만 각지의 투족은 모두 비교적 안정적인 소형 집거지를 보유하고 있다.

1949년 9월 5일 서녕이 해방되고 잇달아 민화와 악도, 천축, 대통, 호조, 등 투족집거지가 해방을 맞으며 투족은 새로운 역사의 한폐이지를 열었다. 그리고 1950년 중국공산당과 정부의 영도하에 투족지역은 일련의 민주개혁을 단행하고 농업과 수공업, 자본주의 상공업의 사회주의 개조를 순조롭게 마쳤다. 1954년 정무원의 비준을 거쳐 투족지역의 첫 자치정권인 호조투족자치구가 설립되고 1955년에 호조투족자치현으로 개명했다. 1985년에는 청해 투족인민들의 거주 특점에 따라 민화회족투족자치현, 대통회족투족자치현을 설립했다. 이로써 지역자치를 맞이한 투족인민이 투족 총인구의 71% 좌우에 달했다. 이외 투족들이 집중되어 있으나 인구가 비교적 적은 향은 투족향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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