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正善
2021-03-15 09:47:50 출처:cri
편집:朱正善

몬바족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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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바족은 오랜 역사와 문화를 보유한 민족으로 티베트자치구 동남부의 먼위(門隅)와 모퉈(墨脫)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춰나현(錯那縣)의 러부(勒布)는 몬바족의 주요한 집중거주지역이다. 몬바족은 티베트족과 장기간 사이좋게 보내면서 서로 통혼을 했고 정치와 경제, 문화, 종교습관, 생활풍속 등에서도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몬바족은 1964년에 중국의 단일민족으로 확정되었다. 2010년 제6차 전국인구보편조사에 따르면 몬바족 인구수는 1만 561명이었다.

몬바는 “먼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몬바는 이 민족의 자칭인 동시에 티베트족과 기타 민족들이 몬바족에 대한 호칭이기도 하다. 이들이 살고 있는 지역적 차이 그리고 역사적인 민족이동 등으로 각지의 몬바족은 다른 호칭 예하면 “주바(主巴)”, “러보(勒波)” 등이 있다.

신화와 전설 그리고 티베트고문서 기재, 고고발굴자료로 볼 때 몬바족은 먼위의 토착민군체와 티베트고원 북부에서 온 군체가  융합하여 형성되었다. 장기적인 역사발전과정을 거쳐 토번(土蕃)왕조가 티베트 여러 부족을 통일하기 전 쯤에 몬바족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기원 7세기 먼위지역은 토번 지방정권의 관할에 들어갔으며 따라서 몬바족들도 토번에 귀속되었다.

13세기 중반에 먼위는 티베트 사가지방정권의 관리범위에 들어갔고 원나라의 행정구역으로 되었다. 그러다가 14세부터 16세기까지 티베트 가취안파세력이 이곳을 영지로 삼았다. 이 기간은 몬바족의 역사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티베트지방정권은 먼위지역에 관원을 파견하고 역참, 세무관, 검사소, 장마당 등을 세웠으며 불교를 전파하고 사원건축 등을 진행했다. 그 결과 몬바족의 부족사회와 마을조직이 큰 변화를 가져왔다. 즉 원래의 성격과 기능을 유지한 외에도 티베트 지방정권과 영주에게 공물을 바치고 부역에 종사했으며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등 부담이 과중해졌고 몬바족은 점차 농노(農奴)로 전락했다.

17세기 중반에 와서 티베트불교의 거루파가 티베트지방정권을 장악했다. 1656년에 이르러 5세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지방정권에 많은 특권을 부여했다.

18세기 초에 이르러 티베트 지방정부는 원래의 관리제도에 기반해 먼위 지역에 대한 행정관리체계를 한층 정비했다. 이들은 먼위에 지방행정기관을 설치하고 호구조사를 진행했으며 법률을 반포했다. 따라서 몬바족에 대한 통치가 한층 강화되었다. 19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이 지역에 대한 관리직능을 보강하여 급별이 높은 행정관리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다.

18세기에 몬바족 생활지역의 봉건 농노제도가 이미 완성되었다. 이로 인한 결과는 몬바족에 대한 티베트 지방정부의 통치가 강화되고 서남 국경지역의 안정이 보장되었으며 국가 판도의 완정성과 통일성이 다져진 것이다. 다른 한가지 결과는 티베트의 3대 영주인 관가, 사원, 귀족들이 몬바족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게 되고 몬바족인들의 생활이 더욱 어려워진 것이다. 도탄속에 빠진 몬바족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동부지역으로 이주를 시작한다. 이는 기나긴 과정이었다. 모퉈지역에 이주해온 사람들은 이미 10대가 넘었고 제일 늦게 이주해온 사람들도 6대가 넘는다. 이들은 백마강(白瑪崗)지역의 야룽쟝푸강 연안에 정착했다. 모퉈에는 지금까지도 이들의 이주 역사와 관련된 유적들이 남아있다. 일부 몬바인들이 백마강지역에 이주함으로써 몬바족은 동부와 서부에 분포되어 사는 구도를 형성했으며 이는 몬바족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44년에 영국군이 몬바족 두령 6명을 제압하고 먼위의 지러바러지역을 강제로 조차했다. 이는 가이리바라 산구 이남에 대한 몬바족의 관할권을 빼앗는 행위로 몬바족의 저항을 일으키는 불씨가 되었다. 1872년 겨울 영국군 대표가 불합리한 영토 요구를 제기하자 몬바족 두령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는데 이는 몬바족인들의 강한 애국정신의 발로였다.

1913년부터 1914년까지 영국정부의 대표가 먼위지역을 포함한 9만평방킬로미터의 영토를 영국에 귀속시키려 했다. 이는 중국정부와 티베트의 티베트족, 몬바족 등 여러 민족의 견결한 반대에 부딪쳤고 중국 중앙정부는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영국 식민주의자들은 책략을 바꾸어 고찰, 탐험 등 명의로 이 지역에 침투했고 티베트족과 몬바족을 이간시켜 세력범위 확장의 목적을 이루려 했다.

1938년 영국은 원정군을 파견해 4월에 이 지역에 이르렀으나 몬바족의 격렬한 저항을 받아 철수했다. 1944년 초에 영국군이 또 다시 먼위지역을 무력으로 진공했고 이 때도 현지정부와 몬바족인들의 강한 저항을 받았다.

1947년후 영국정부로부터 독립한 인도정부가 티베트에 대한 영국정부의 영토 강점을 승계한다는 이유로 몬바족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행동을 취했다.1947년 먼위 써라산(色拉山)이남 지역을 통제한 인도군은 써라산 이북의 몬바족 사람들이 티베트지방정부에 세금을 납부해서는 안되다는 명령을 내렸고 이는 이 지역 주민들의 강한 반대를 받게 되었다. 1951년 2월 7일 인도군이 먼위의 중심지역인 다왕(達旺)을 강점하자 이 곳의 군중들이 자발적으로 집회를 가지고 인도군의 철군을 요구했다. 이상 사실들에서 우리는 몬바족인들이 식민주의확장과 외국침략자들에 대해 올곧은 기개를 보여주었음을 알수 있다. 이들은 국가주권과 영토완정을 수호하고 조국의 남쪽국경을 지키는데서 큰 기여를 했다.

1951년 티베트가 평화적으로 해방되었고 1959년에 티베트는 민주개혁을 단행해 봉건농노제도를 철저히 혁파했다. 이로써 몬바족인들은 사회발전의 역사적인 비약을 실현하고 새로운 삶을 영위하게 되었다.

1959년 7월에 모퉈현인민정부가 설립되었고 같은 해 춰나현은 러부구를 내오고 마마향, 지바향, 궁르향, 러향 이 네개 향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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